영농지원 사역은 중앙아시아에서 연해주로 재 이주한 고려인들 중 영농을 통해 생업을 꾸려가고자 하는 분들이 자립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사역입니다. 비닐하우스 농사를 시작하기 원하는 농가들이 주를 이루고, 노지 농사와 농산물 유통을 원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작은 규모로 하시는 분들은 모종(채소모종, 꽃모종)을 키워 판매하시고, 2~3동의 비닐하우스를 가지고 계신 분들은 집약적인 시설농업을 하십니다. 한국에서 하고 있는 시설하우스 농사법을 따라가는 형태이지요. 비닐하우스를 통해 어느 정도 소득이 축적된 경우에는 노지에서 15,000평 내외의 농사를 짓습니다. 저희 영농가족들 중에서도 20여가정이 노지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비닐하우스농사가 지렛대의 역할을 했다면 농지농사에서 꽃을 피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습니다.
저희가 지원하는 시스템은 100% 상환을 전제로 한 지원체계입니다. 초기에는 농가주택구입, 농기계, 유통을 위한 차량지원, 소액대출 등 여러 모양의 지원을 하였고 지금은 직접적인 영농에 필요한 지원으로 한정하고 있습니다. 농사준비에 긴급히 필요한 소액지원(3개월 기한)과 비닐하우스, 영농자재 지원입니다. 현물로 비닐하우스를 지원받은 경우에는 3년에 걸쳐 상환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소모성 물자의 경우는 신용으로 지원하고 농사가 끝나면 상환하는 형태입니다. 솔직히 이 상환이라는 부분만 없다면 얼마나 신나고 환영 받는 사역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저희와 관계를 맺고 있는 분들은 대개가 어려운 분들입니다. 좀 여유가 있는 분들의 경우는 현금으로 구매하도록 다른 사업자를 소개해 주고 있기에 어려움을 지고 갈 수 밖에 없는 구조이지요. 이혼, 질병, 사망, 흉작, 자녀진학, 집수리 등 사정을 듣다 보면 ‘상’자도 꺼내기가 어려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사정을 헤아리면서 다른 분들의 푸념이 나오지 않도록 이끌어 나가는 게 어려움이자 숙제인 것 같습니다.
소득이 늘어나면 많은 부분 해결될 수 있는데, 오히려 중국인들을 중심으로 대규모 비닐하우스 도입에 따른 경쟁력 하락의 상황이 발생되었습니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솔루션이 요청되었고 이 역할을 영농센터를 중심으로 풀어나가고자 시작하였습니다. 크레모바 영농센터에서는 100평형 8개동과 120평 4동, 모종전용 2동의 시범비닐하우스를 운영하고 있으며 1000평 정도의 노지재배를 하고 있습니다. 매년 전문가를 초청하여 세미나와 컨설팅을 진행하고, 기존에 재배하고 있는 작물의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 등을 시범하고, 새로운 작목들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영농식구들이 시작하기 전에 실패 및 성공, 특성 등을 먼저 거쳐봄으로써 새로 시도하는 식구들의 부담을 피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실패와 성공을 모두 경험해 본 딸기와 복분자, 새로이 시도하려 준비중인 호접란 입니다. 자연스레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경쟁력의 빈 공간을 새로운 것들로 채워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종종 이런 질문들을 던져봅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선교사가 아닌 타 단체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은 아닌가? 그분들과의 차이가 있다면 무엇인가? 나중에 주님을 뵈었을 때 뭐라 하실까? 한참 많은 일에 정신 없이 일하다 보면, 가끔 아내가 꼬집듯 일깨워 줍니다. 주께서 저희들이 하는 사역을 어여삐 여기셔서 조금씩 보람을 맛보도록 하셨습니다. 영농가정들을 기반으로 선교사를 통하여 한곳에 교회가 세워졌고, 다른 한곳은 내년 교회 설립을 목표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영농을 통하여 자립을 도모하며 사역하고 있는 사역자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스따라레친스까야의 아르뚜르전도사와, 라지돌리니야의 알베르트목사, 미하일로브까의 줴냐목사가 그렇습니다. 몇 년 전 남서울 은혜교회에서 이 곳 신학교에 전도폭발훈련을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한 분이 이런 얘기를 하였습니다. 교회사역을 하는 데 형편이 어려워 몇 개월 사역하다 돈이 떨어지면 일자리를 구해 몇 개월 정도 일하고, 조금 돈이 생기면 다시 와 사역하는 일을 반복한다는 안타까운 이야기였습니다. 비단, 그때 그분만의 사연이 아니라 제 주변에 지금 중앙아시아에 통역으로 몇 개월 동안 일하여 가족의 생계대책을 풀어 보겠다고 자리를 잠시 떠난 사역자도 계십니다. 분명 사역에 열정이 있으나 현실적인 어려움에 고민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지요. 저희 영농사역을 통해 이런 현실적인 어려움에 고민하는 사역자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들은 무엇일까 고민하게 됩니다. 이러한 고민은 특히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도시보다도 내지에 교회를 세워가는데 더 큰 어려움입니다.
사역을 시작하며 ‘떡과 복음’의 균형 있는 사역이 될 수 있도록 마음 써 왔습니다. 마을을 바꿔가며 성경공부 모임들을 인도하고, 소규모 모임들이지만 예배를 드리고 동역자들과 함께 영농식구들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해 왔습니다. 이러한 사역의 형태가 작년 7월 종교법을 기점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자칫 잘못하여 종교법에 의해 시비가 붙으면 저희가 담당하고 있는 사역자체에 어려움이 처할 수 있기에, 잠시 멈추고 합법적인 대안을 찾아보라는 것이였습니다. 서울홍성교회의 최기영 장로님이 작년 초 동역을 시작하면서 새로운 길을 주께서 열어주셨습니다. 육적, 영적인 필요를 채워주는 사역적 균형, 내지교회개척에 대한 영농사역의 역할과 기여, 주께서 알려주시는 방향등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5곳의 마을에 영농과 관련되어 사역이 되어지는 것을 보며, 영농센터에서 이러한 뜻을 가진 사역자들을 길러내고 자립할 수 있도록 돕자고 의기투합하였습니다. 마당쇠와 돌쇠의 모습을 보여주어 영농을 통해 자립을 하려면 머슴의 정신과 삶이 병행되야 함을 알려주고자 합니다. 체르니꼬브까의 지마목사가 저희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텐트메이커사역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마목사를 아는 여러 사역자들이 관심있게 지켜본다는 얘기도 듣습니다. 하루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성경을 펼칩니다. 같이 일하는 줴냐와 로자가 유창한 소리로 성경을 읽어나가고 생전 처음 접하는 료하가 떠듬 떠듬 성경을 읽어나갑니다. 말씀보다 기도보다 앞서지 않는 사역이 될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지금도 변함없이 기도하고 있는 ‘요셉의 창고’에 대한 비전에 저희 영농사역이 어느 한 부분을 담당 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 이흥규, 배미용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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